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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가끔 마음을 주지만, 소는 언제나 전부를 바친다.
2008년 제13회 부산국제영화제 ‘Piff 메세나상’ 수장작이며 2009년 제25회 선댄스 영화제 다큐멘터리 경쟁부문 출품작인 김충렬 감독의 ‘워낭소리’는 개봉 당시에는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으나 영화를 본 사람들의 입소문을 타고 최종적으로는 300만명에 가까운 관객 수를 기록했다. 이런 독립영화의 관객 수 300만명은 일반 상업영화로 치면 1,000만명이 훌쩍 넘는 것과 같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상을 바꾸는 ‘따뜻함’이 있습니다.
‘워낭소리’는 주인공 할아버지의 오래된 농사법처럼 없는 게 참말로 많다. 우선 다큐멘터리에서 흔하게 내세우는 나레이션이 없고, 스펙타클한 사건도 없고, 화제를 일으킬만한 화려한 장면도 없다. 눈길이 머무를 만한 예쁜 얼굴의 배우는커녕 꼬부랑 노인 두 명과 나이가 들어 움직이는 것조차 힘들어하는 소 한 마리가 출연진의 전부이다.
‘워낭소리’는 평생 할아버지만을 바라보고 살아온 할머니의 끊임없는 신세 한탄과 지청구(까닭 없이 남을 탓하고 원망함)가 전체 대사의 8할을 차지하고, 그런 할머니의 절절한 토로에도 눈 하나 꿈쩍하지 않는 할아버지와 말 못하는 늙은 소 한 마리가 영화가 보여주는 모든 것이다. 할머니는 할아버지와 소의 관계에 대한 오랜 관찰자로서 대사를 통해 나레이터의 역할을 톡톡히 하며 영화에 꾸밈없는 웃음과 따뜻한 온기를 머금게 하는 최고의 배우이다.
마음을 울리는 뭉클함이 있습니다.
사라져 가는, 잊혀져가는, 늙어가는 것들에 대한 우리의 보편적인 인식은 애잔하게 다가오는 대상에 대한 먹먹함이다. ‘워낭소리’는 경제 개발과 도시화에 잠식되어 본연의 빛을 잃어가고 있는 농촌의 아름다움과 잊혀진 노스텔지어, 그리고 세월과 함께 늙어가는 우리네 부모를 되살려낸 기적 같은 영화이다.
보통 15년을 사는 소가 40년을 촌로(시골에 사는 늙은이)의 곁에서 묵묵하게 여생을 함께 하며 그의 길잡이가 되어준 기적일까? ‘워낭소리’는 아직 사라지지 않은, 잊혀지지 않은, 늙어 죽지 않은 소와 농부의 존재와 관계를 증명하면서 자신의 존재만을 쫓아 정신없이 살아가는 이 시대의 모든 이들에게 진정한 삶에 대한 질문과 성찰의 기회를 제시한다.
30년을 한결같이 함께 한 친구이자 동료인 소와 함께 보내는 소박한 인생의 미덕은 소의 마지막 1년의 삶과 맞물려 뜨거운 울림을 자아낸다. 하지만 마지막을 향해 간다는 것뿐이지 멈추지 않는 소와 할아버지의 일상의 노동은 사계절의 풍경을 녹여낸 영상과 함께 반복되면서 처연함을 넘어 숭고한 의식과도 같은 감동의 카타르시스로 승화된다.
‘워낭소리’가 마음을 뭉클하게 만드는 가장 큰 이유는 우리가 잊고 있었던 것에 대한 깊은 깨달음이 감동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신종수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