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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아누크빌의 경제적 중요성과 개발 과정
캄보디아-중국 관계와 협력의 역사
벨트 앤 로드와 펜타곤 전략의 융합
▲2024년 9월 25일, 깜뽕스푸주에
위치한 프놈펜-시아누크빌 고속도로의 구간을 촬영한 드론 사진. 캄보디아 PPSHV 고속도로/이미지=Khmer
Times
캄보디아의 정치적 독립에 헌신한 시아누크 국왕은 경제 개발에도 열정을 쏟았다. 시아누크
국왕은 1955년 3월, 통치에
깊이 관여하기 위해 아버지 수라마릿 국왕에게 왕위를 물려주었다. 그는 정치 정당을 조직하고 총선에서
승리한 후, 정부를 이끌기 위해 총리가 되었다. 시아누크빌은
국가 경제 건설을 위한 그의 비전이 집약된 사례이다.
캄보디아의 독립 이후, 기존의 깜폿항은 현대 무역을 위한 수심이 충분하지 않았다. 더 깊고 기능적인 항구의 필요성을 인식한 시아누크는 새로운 심수항 건설 계획을 시작했다.
태국 만의 한적한 어촌이었던 콤퐁솜(Kompong Som)은 적합한 수심과 전략적 위치로 선정되었다. 시아누크는 항구와 주변 도시를 정밀하게 계획하며 활발한 무역과 활동의 중심지로 구상했다. 그의 이름을 따서 명명된 시아누크빌은 현재 주요 도시로 성장했으며, 콤퐁솜 항구는 캄보디아의 유일한 심수항으로서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시아누크의 경제 개발과 시아누크빌의 변화
시아누크는 국가 개발을 추진하며 수많은 장애물을 겪었다. 항구 건설 과정에서, 프놈펜과 콤퐁솜을 연결하는 도로나 철도 건설을 위해 미국의 지원을 요청했다. 그러나 워싱턴은 캄보디아가 협력 의지를 보이고 자신들의 보호를 받아들여야 지원을 제공하겠다는 조건을 내세웠다.
이 경험은 미국이 제공하는 ‘친절한’ 군사 지원이 조건적이고 모욕적일 수 있음을 시아누크에게 일깨워 주었다. 캄보디아 전쟁 중 시아누크가 추방되면서 도시는 콤퐁솜으로 개명되었으나, 1993년 국왕으로 복귀한 후 다시 시아누크빌로 이름이 변경되었다.
시아누크가 추구한 중립성과 평화 덕분에 캄보디아는 평화를 되찾은 후 경제 개발의 빠른 궤도에 올랐다. 2004년 캄보디아 정부는 국가 개발을 위한 ‘사각형 전략(Rectangular Strategy)’을 제안하며 시아누크빌을 우선 순위로 삼았다. 2008년, 시하모니 국왕은 시아누크빌을 시아누크빌 주로 승격했다.
최근 몇 년간, 이 도시는 다기능 경제 시범 지역으로 지정되어 캄보디아의 새로운 경제 엔진으로 부상하며 국제 투자와 관광객을 끌어들이고 있다. 대규모 인프라 및 산업 프로젝트, 고층 건물, 시아누크빌 항구의 새로운 심수 부두 건설, 시아누크빌 경제특구 및 주변 섬 개발 등이 이루어지고 있다.
캄보디아-중국 협력과 우정의 역사
중국과 캄보디아는 인접 국가로서 오랜 우정을 이어왔다. 1955년 반둥회의에서 시아누크는 저우언라이 총리와의 깊은 우정을 맺었다. 양국의 외교 관계는 1958년 7월 공식적으로 수립되었으며, 시아누크는 중국과의 우정을 강화하기 위해 헌신했다.
1950~60년대, 중국은 캄보디아의 섬유, 합판, 종이, 시멘트, 유리 제조 등 여러 산업 프로젝트에 협력하며 실질적인 산업 기반을 구축하는 데 기여했다. 시아누크는 이 협력을 통해 현지 자재를 기반으로 한 산업화를 달성했다고 평가했다.
중국 정부와의 관계는 어려운 시기에 시아누크가 중국에서 장기 망명을 선택하도록 했다. 그는 중국이 캄보디아의 독립과 주권을 지키는 데 강력히 지원했다고 회고했다.
벨트 앤 로드와 펜타곤 전략의 융합
최근 캄보디아와 중국은 ‘벨트 앤 로드 이니셔티브(BRI)’와 2023년에 제안된 ‘펜타곤 전략’을 결합하여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대표적인 성과는 2022년 개통된 프놈펜-시아누크빌 고속도로로, 이동 시간을 5시간에서 2시간 이내로 단축하며 국민들에게 큰 편의를 제공했다.
시아누크의 독립과 국가 이익 추구는 그의 가장 주목할 만한 정신적 유산으로 남아 있다. 이는 캄보디아의 미래를 위한 등불이 되고 있다.
원문: Sihanouk’s vision for Cambodia’s economic development - Khmer Times